서로마제국의 멸망







. 서 로마제국의 멸망
  The Fall of the West Roman Empire  


참조동로마제국의 멸망
http://seoultour.textcube.com/46


마는 BC 753년 로물로스에서 건국하여 AD 476년, 무려 1229년 동안이나, 이는 아테네에서
시작했던 그리스 문명에서 처럼 로마란 도시에서 출발하여 융성했던 로마문명의 도시국가였다.

서로마 제국이 AD 476년 망한 뒤에도 동로마 제국은 AD 1453년까지 건재하게 되는데
기실 도시국가 로마에서 출발한 서로마 제국과는 다르게 영토를 정한 뒤 나중에
지리적 편의에 의해서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정한 동로마 제국은 분명히
국격의 뉘앙스가 다른 것이었다 라 본다면, 공식적인 로마제국이 쇠망한 해는
오토아케르에게 로물로스 어린 황제를 퇴위시키고, 그 자신은 물론 아무도 제위에
올리지 않은 때인 AD 476년 해를 멸망한 시기로 보는 시각이 타당한 듯 싶다.

그 시대 나라의 주 산업인력이었던 농민의 이동 양상을 조사해 보면 흥미로운
것을 알수 있다.

즉 3세기에 로마의 농민들은 야만족의 잦은 약탈에 이골이 나 계속 시골에서 로마 시내로
영입되었다. 결국 시내 인구는 과부하가 걸리게 되었고, 4세기에는 그에 따른 인구 집중화를
막기 위해 직업의 세습화를 정책화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서로마 제국 말기인 5세기에는 다시 농부들은 시골로 낙향하기 시작한다. 대신
농민 자격으로 가는게 아니라 농노로 가는 것이었다.

이것은 자영농민이 발 붙힐 곳이 없어 졌다는 의미다. 혼자서 높은 세금과 도적들에게 경비와 안전을
도모할 자경단 조직은 힘에 붙혔다는 반증이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론 팍스 로마나 시대는 날
새버렸다는, 어려운 난세시대로 접어 들었음을 나타내는 시대의 반증이기도 하다.




서기 393년 크라티아우스 황제를 제거에 성공한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광활한 로마제국을
그 혼자 다스리게 된다. 그리고 이 거대한 제국을 두 아들에게 분할해 물려주고, 군사적인
호위는 스틸리코 장군에게 맡긴다.


그의 아들과 딸들 : 아르카디우스 (장남-동로마 황제) / 갈라 / 호노리우스(차남 서로마황제)

아르카디우스 (장남-동로마) / 갈라 / 호노리우스(서로마 황제) <= 동서 로마 분할 통치 확립
      스틸리코 장군-세레나(테오도시우스의 조카딸)
             에우케리우스(아르카디우스 ,갈라,호노리우스와 사촌 지간)

     밀라노 시대
스틸리코 장군 처형
     알라리크의 서고트 족 2번에 걸친 로마 겁탈
    
동로마 제국 - 아르카디우스 황제의 자손들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 이르카디우스 황제 사후 황제 즉위 / 풀케리아

그들을 보좌하던 2명의 장수 : 보니파키우스 장군  아이티누스 장군

동로마 제국 상황 :
테오도시우스 2세 다음 => 동로마제국의 원로원 출신
마르키아누스 황제 즉위
그 다음 레오 황제 즉위

서로마 제국 상황:
갈라(테오도시우스의 친딸)-콘스탄티우스 장군
                     발렌티니아누스 / 호노리아=>(아틸라에게 청혼해서 아틸라를 서로마 제국에 침공하게 만듬)
샹파뉴 회전
베네치아의 탄생

아틸라의 죽음 

. 아이티우스 장군 발렌티니아누스 황제에게 죽임을 당함
이로써 겐세리크 반달족 로마 겁탈

발렌티니아누스 다음에 => 막시무스 즉위 즉시 제거

455년 아비투스 황제 갈리아에서 옹립
마요리아누스 황제 즉위 => 곧바로 살해
리비우스 세베루스 황제
안테미우스 황제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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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시기엔 훈족이 잦은 침략을 해 온 시기이기도 하다.

흉노족이라고도 불리는 훈족은 게르만 족에 맹공을 가해 로마 제국까지 도망치게 만들었던
훈족의 대왕 아틸라가 한 동안 로마를 뒤흔들었고, (훈 족은 중국 한나라를 위협했던 흉노 족)
훈족은 수백년 간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몽골, 이슬람 문명권을 잔인하게 유린하면서
라인강 동북쪽의 게르만 족을 서남쪽으로 몰아내면서 로마제국을 위협한 부족이었다.

동로마 제국과 협정을 맺어 평화를 지킨 아틸라의 형과는 달리 훈족을 이끈 아틸라 왕은
조직을 이끄는 리더쉽이나 문화의 힘, 도덕성이 다소 부족했다.

압도적인 힘과 파괴력, 로마를 침략하여 모조리 불태우고 빼앗고 죽여버려서 서방에서는 그를
' 신의 회초리 ' 라 별명을 붙혔으며, 그가 다스린 훈족은 공포의 부족이었다.

아틸라는 자신의 백성들에게는 매우 후덕한 왕이었기 때문에 일사불란한 군사 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정복지의 사람들의 죽음과 약탈 경제의 우위에서 가능했던 단기적 비생산 체체였기 때문에
지속가능하지 않았으며, 그가 로마 아이티우스 장군에게 연달아 싸움에서 패한 뒤, 연회장에서 급사한
뒤엔 뒤를 이을 후계자 부제로 인해 훈족은 소리도 없이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아무튼 로마 말기가 오기 전에 로마황제 두 사람은 자신은 물론 로마제국을 호위해 줄 두 명의
장수를 무력한 황제가 죽이는 사건이 두번이나 번복된다.

결국 자신의 칼로 자기의 오른팔, 왼팔을 잘라 버렸다는 이야기인데

그 첫번째는  호노리우스 서로마 황제가 최후의 로마인 이란 칭송을 받고 있는 스틸리코 장군을
처형한 사건이고 이로 말미암아 AD 410년 알라리크가 이끄는 서고트 왕국이 발칸에서 군대를 일으켜
두번에 걸쳐 로마 겁탈이 이루어 진다.

참조 :
 . 김동욱 기자가 본 스틸리코 장군의 아쉬운 죽음
http://blog.hankyung.com/raj99/284642

두번째는 AD 454년 발렌티니아누스 황제가 아이티우스 장군를 칼로 직접 베어 버림으로써
훈족 아틸라를 물리친 명장을 내쳐 버리는 불행이 찾아온다.


                            아틸라 야만족과 전투를 벌이는 아이티우스 장군 (로마 승리~)

이로써 북아프리카 AD 455년 반달족이 로마의 외항 오스티아를 점령하면서 또 한번의
세기적인 로마 겁탈이 이루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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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AD 476년 로마가 패망하기 얼마전의 말년 20여년 전 즈음에 스치듯 명멸하는
12명의 황제가 계속 어수선하게 집권하게 된다.

그로 말미암아 로마는 어수선한 정국 불안정이 찾아온다.

그 12명의 황제 중 조금 특징적인 황제를 들자면 마요리아누스 황제를 들 수 있겠다.

당시 실세를 쥐고 흔들었던 궁정관료란 기득권층에 의해 추대된 마요리아누스 황제는
457년 ~ 461년 4년여의 재위기간 동안  서민을 위한 획기적인 개혁 정책들을 시행해 나갔는데
결국 이것은 기득권층과 상충된 모순 요소가 많아 점점 갈들이 고조되었으며,
그는 많은 면에서 당시 궁정관료의 미묘한 권력싸움과 역학 관계 속에서
황제로 천거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즉위 후 수많은 개혁을 통해 당시 기득권층을 형성한
궁정관료 측으로부터 불신임을 받게 된다.

그는 여러 반목적이며 혁신적인 여러 개혁 정책을 하게 되는데, 이를 안좋은 시선으로 바라다 본
기득권층이 드디어 황제가 정말 어려운 국가 재정에도 불구하고 야심차게 추진 중이었던
북아프리카 반달족 정벌을 위한 군함을 대량으로 건조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비해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간교함을 갖춘 채, 강온 정략을 구사하던
반달족의 왕 겐세리크의 기습 화공을 받고 건조 중인 선단이 전부 불타게 된다.


                                              유명한 반달족의 로마 침공 겁탈 장면
                            AD 455년 겐세리크가 이끄는 반달족의 침입으로 명명된 '로마겁탈'


한편 10만명의 반달부족을 이끌고 이베리아 반도에 쫒겨나 북아프리카로 넘어간 뒤
( 원군 출병을 핑계로 한 북아프리카 침략 )
그대로 눌러 앉아 버린 반달족의 왕 겐세리크는 기독교 도나투스파와 연합으로
북아프리카에서 카툴릭 세력인 로마를 몰아내고 점령한 뒤 시칠리아를 비롯,
한 동안 로마 시가지에까지 침략, 겁탈하기도 하는 등 북아프리카에서 계속 맹위를 떨치다
로마가 패망한 476년 그 이듬해인, 477년 노환으로 죽는다.

다시 마요리아누스 황제 이야기로 돌아가서, 항구에 건조 중이던 배들이 불탄 뒤 마요리아누스
황제는 로마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그의 실책이 있기만 고대하던 궁정관료의 사주에 의해
안타깝게 살해 되고 만다.

여기서 우린 그의 집권 형성은 차지에  놓고라도, 그의 정책 방향은 옳았으나, 당시
그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개혁을 추진하다 살해된 불운한 로마황제의
한 단면을 엿보게 된다.

그후에도 로마는 동.서 로마 제국이 힘을 합친 북아프라카 수복작전을 연합으로 단행하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AD 472년 당시 황제를 뒤에서 조종하며 실권을 쥐고 흔들었던 리키메르 재상은
동로마 제국에서 천거한 안테미우스 황제에 맞서서 자기 수하인 올리브리우스를 제위에
앉히려 한다. 그 와중에 로마 시가전은 벌어지고,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벌어진 전투에서
안테미우스(전사), 리키메르(병사), 올리브리우스(암살) 등의 사건이 일어나며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서로마 제국은 글리케리우스 황제를 제위에 다시 올리지만  금새 제거되고, 다시 서로마 측은
동로마 반대파 측 세력의 추대로 오레스테스를 제위로 오르게 하지만 여기서
동로마 제국은 판노니아 지방의 군사 책임자인 네포스 장군을 서로마 황제로 임명시킨다.

당시 군사와 자금력에서 실세를 쥐고 있었던 동로마 제국의 레오 1세 황제는 당시 서로마 황제였던
글리케리우스를 왕위 찬탈자로 여기고 있었다.

네포스 황제는 이탈리아에 도착하자마자 글리케리우스를 왕위에서 몰아내고, 474년 6월 그 스스로
서로마 제국 황제라고 선언했으나 이듬해 지금의 프랑스 툴루즈 근처를 중심으로 한 서고트 왕국의
독립을 승인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북이탈리아 지역의 군대 장수들은 자기네 땅을 떼어 주라고 스트라이크 겸 반란을 도모하며
그 좌장 격에 오토케아르를 지명한다.

얼마 후, 귀족인 오레스테스가 반란을 일으키자 달마티야로 도망쳐(475. 8) 5년 동안
살로나이(지금의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근처)에서 살았는데, 동로마는 그를 황제로 인정했지만,
군사력을 등에 업은 오레스테스는 결국 자기의 어린 아들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서로마 제국 황제라고 선언했고, 네포스 황제는 결국 글리케리우스의 지지자들에게 살해당한다.

오레스테스는 자기 대신 아들 로물로스 아우구스투스를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정한다.

그렇지만 결국 야만족 출신 장수인 오토아케르에 의해 오레스테스는 죽임을 당하고 그의 아들
로물로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폐위를 당하고 만다.

공교롭게도 로마 건국의 시조 로물로스와 로마 폐망 황제의 이름은 똑같다.

이것은 그 당시 옛날 유명한 위인의 이름을 아이들에게 붙여주는 유행에 따른 것이었다.



                                           영화 - " THE LAST LEGION (최후의 군단) "

시놉시스 및 설명 :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5874
http://blog.naver.com/helpmeo2?Redirect=Log&logNo=110024857565
http://handosa.egloos.com/1920556

영화 보기 :
http://v.youku.com/v_show/id_XMjQ3MTc4MjQ=.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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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오토아케르(Odoacer, 435년 ~ 493년) 이탈리아의 자칭 왕(재위 480-493)이자,
실질적으로 서로마 제국을 침몰시킨 장본인 오토아케르에 대해서 알아 봐야겠다.

그는 훈족과 스키리아인의 피가 반씩 섞인 헤룰리족으로, 476년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오도아케르는 원래 로마인들로부터 변방의 경비를 위임받은 하청 업체 장수였는데 이 하청업체 마름이
주인을 죽여버린 꼴 난 짝이 되어 버린 격이다.
                                             
결국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나폴리 만의 루쿨라눔으로 유배 당했으며,
아버지 오레스테스는 무참히 살해 하였지만 오토아케르는 로물로스를 여생까지
끝까지 살게 내버려 두었다.

로물루스를 퇴위시킨 뒤 오도아케르는 당시 궁정을 휘둘렀던 실세 궁정관료 리키메르 등이 했던 것과
달리 또 다른 허수아비 황제를 세우지 않으면서, 킹 메이커 역할을 접고 비잔티움 제국의 섭정이 되어
서로마를 직접 통치하기로 결정했다.

야만족 출신의 오토케아르 장군, 그는 전임 황제를 퇴위 시키고 이제 아무도 그 뒤를 이어
아무도 서로마 제국의 황통을 이어 받는 작업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는 언제 망했는지도 모르게 소리 소문도 없이 멸망하고 만다.

그리고 그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에게 황제 직함 보다는 파트리키우스(Partricius) 라는 이름으로
자칭 왕 보다는 황제 대리인 이란 명칭으로 승인해 주길 동로마 제국에게 간청한다.

이는 그가 동로마제국의 미움을 사 군대 출동이 자제되길 바랬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후 17년간 아무 문제없이 이탈리아 땅을 잘 통치했었던 오도아케르와 비잔틴움 관계도
나중엔 그리 좋지 않게 진행되고, 489년 비잔틴의 제논 황제는 동고트족의 테오도리크에게 군권을 위임.

(제논 황제가 한 동안 퇴위 되었을 때 발칸의 유력자 테오도리크 에게 큰 도움을 받아 다시 재위에 성공)

오도아케르를 정벌케 했으며 결국 493년 오도아케르는 테오도리크와의 3차에 걸친 전투에서 패해
결국 그의 손에 의해 살해된다.

이제 테오도리크 왕 (454년 ~ 526년, 재위 488년 ~ 526년)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는 동고트 왕국의 초대 국왕이며 이탈리아의 군주이며 고트어 이름은 튜다라익스로
"백성들의 왕" 이라는 의미이며, 외로운 늑대 라 불리는, 즉 자기 휘하의 부족이 따르지 않고
고트 야만족 출신이면서도 로마군 속에 편입되어 휘하 병졸을 모으고 두각을 나타낸
오토케아르 왕과는 달리 동고트 부족을 이끌고 있는 테오도리크 왕은 454년, 동고트족이
훈족들에게 점령된 지 1년째 되던 해 튜다미르 왕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후 테오도리크는 튜다미르와 비잔티움 제국 사이의 협정의 결과로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볼모로
유년기를 보냈다.

그러면서 테오도리크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지내며 비잔티움 제국의 정치, 군사
그리고 동로마 제국의 근본적인 정책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된다.

참조로 당시 동로마 제국에 정식 승인을 받은 테오토리쿠스 왕과는 달리 자기 부족을 이끌면서
자칭 왕이라 주장하며 갈리아 제국에서 이름을 날리던 왕은 서고트 족장인 알라리크,
현재 프랑스의 파리를 수도로 정한 프랑크 족 족장 클로도비크(클로비스)와
북아프리카의 군주 반달족 족장 겐세리크 정도를 들 수 있다.

동로마제국 황제 레오 1세와 제논의 호의를 얻어 483년 마기스테르 밀리툼(군사 대장)이 되고
1년 뒤 집정관이 되었다.

이후 이십대 초반 동고트족과 보냈으며 드디어 488년 동고트 족의 초대 왕이 되었다.

이 무렵 동고트족은 비잔티움 제국 내에 로마의 포이데라티로 거주하고 있었으나
점점 통제하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테오데릭이 왕이 된 이후 소아시아, 발칸 반도에 동고트족의 왕인 아버지는 점차 노쇠해 짐에 따른
요청으로 동로마제국에 볼모로 잡혀있던 테오도리크을 불러 정권을 이양하게 된다.

그 후 테오도리크 왕은 착실히 실력과 영토를 넓히면서 동로마제국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다.

그는 내심 동로마제국의 신하 정도로 만족할 위인은 아니었으며, 이것은 동로마제국의 제논 황제도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던 차 오토케아르를 치겠다는 방침이 정해 졌을 적에
때마침 테로도리쿠스 왕이 스스로 쇠망한 서로마제국을 차지하기 위해 군대를 출동시킨 것을 보고
동로마 제국은 속으론 애물단지를 멀리 떨쳐 버릴 요량으로, 또 한편으론 테오도릭 그 자신의
내심 역시 이탈리아 반도를 차지해서 그의 야심을 마음껏 펼쳐 보고 싶은 야망과 이해관계가
서로 딱 맞아 떨어지게 된다.

이윽고 동로마 황제 제논과의 군사협정을 맺어 테오도리크와 동고트족은 476년 로마를 점령해
통치하던 오도아케르를 몰아내는 데 협조를 받기로 하고 오도아케르가 점령한 이탈리아 북부로
침공하게 된다.

테오도릭는 488년 군대를 끌고 이탈리아에 도착, 489년 이손조의 전투와 밀라노의 전투와
그리고 489년 아다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493년 테오도리크는 라벤나를 점령하고 오도아케르는 항복하고 테오도리크의 손에 살해되었다.



                                야만족 출신 이탈리아 파트리키우스 테오토리크 황제 영묘


오도아케르와 같이 테오도리크는 공식적으로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는 황제의 총독이었으나
실질적으로 테오도리크와 비잔티움 황제의 교섭은 동등한 상황에서 진행되었고,
비잔티움 황제의 간섭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오도아케르와 달리 테오도리크는 왕국 내의 로마 시민들을 로마 법대로 다스린다는
약속을 오토아케르 보다 더 세련되게 지켰다. 고트족은 전통적인 법률과 관습으로
다스려졌다.

테오도리크 대왕은 그후로 자칭 왕으로 분할된 갈리아 제국의 여러 왕들과 친분을 맺었으며
특히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 (Clovis) 1세의 여동생 아우도플레다를 왕비로 맞아들여
결혼동맹을 맺었으며, 서고트족, 반달족, 부르군트족 왕 여러 부족들과도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나중엔 클로비스 1세와는 506년과 523년 테오도리크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

제위기간 대부분 테오도리크 왕은 형식적으로는 동고트족과 서고트족 모두의 왕이었으며
505년경 어린 서고트족 왕의 섭정이 되었다.

테오도리크는 507년 프랑크족에게 서고트 영토인 아퀴타니아를 빼앗겼으나
그 외에는 대부분의 외침을 격퇴했고, 반달족 왕 트라사문트(Thrasamund)를 격퇴해 약탈을 막았다.

테오도리크는 로마가 정식으로 채택한 캐톨릭교의 이단이자 야만족 고트족이 믿었던
기독교 아리우스파의 신자였으며, 이 점 때문에 재위 말 비잔티움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와
마찰이 생겼다.

양국의 관계는 나빠지기 시작했으나 테오도리크가 살아있는 동안은 충돌이 없었다.

테오도리크 대왕은 라벤나에 매장되었으며, 사후 딸 아말라순타가 손자 아탈라릭을 대신해
섭정을 하게 된다.

세월이 다시 흘러 동로마 제국엔 제국의 역사 속에서 몇 않되는 대제라 불리우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즉위하여 로마법을 비롯한 많은 통치를 누리고, 그뒤 차츰 이슬람 문명이 발흥하기
시작하게 되고, 게르만 족이 점차 로마와 공수를 바꿔 시대의 중심세력이 되어버린 가운데,
유럽은 점차 중세기 암흑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여기서 중세 봉건 시대를 암흑시대라 불리는 이유는 게르만 야만족에 의해 유럽세계가
주도 통치된 시기를 후세 역사가들이 지적함을 말함이며, 그런 연후 다시 그 옛날 찬란했었던
그리스-로마문명이 다시 부흥하던 시절을 우린 중세 암흑시대와 구분지어
르네상스 시대라 후세 역사가들은 지칭했다.


참조 사이트:
텍.스.트.큐.브.  View ~ ~

. "로마인 이야기" 를 통해 살펴본 경영 시사점http://inuit.co.kr/986

. 십자군, 성전과 약탈의 역사http://shukri.textcube.com/84

. 이슬람 정복기의 군대http://shukri.textcube.com/55

. 비잔틴 제국, 천년의 역사와 만나다http://shukri.textcube.com/2

. 세상에서 제일 창조적인 건축물 베스트 5http://shukri.textcube.com/81

. 영화 적벽대전의 장면들과 유사한 실제 역사사례들-유사
http://blog.hankyung.com/raj99/217529

. 이태리 베네치아 여행사진
http://blog.naver.com/iamaboy_/30079229488

. 트레비 분수 사진
http://blog.naver.com/iamaboy_/30073397932

. 루비의 정원 - 베네치아
http://rubygarden.tistory.com


. 은하철도님의 유럽여행 스케치
http://worldrail.tistory.com

. 또 다른 세상을 보는 눈 - 이 탈 리 아  여 행
http://bluecap.tistory.com

. 제국주의와 기독교,나치,공산당 모두의 ‘얼굴마담’, 파우스트
http://blog.hankyung.com/raj99/318653
(김동욱 기자)

. 기후변동의 관점에서 로마제국 흥망사.
http://mixsh.com/r/39831323

. 프랑스 몽마르트 언덕
http://blog.daum.net/hakuna0matata/1399

. 아프리카 나라 탐색 - 이집트
http://blog.daum.net/leemsaan/13738517

. 이탈리아 - 바티칸
바티칸 구경가기

. 십자군의 예루살렘 대학살,갈등의 시작-학살
http://blog.hankyung.com/raj99/210363

. 콘스탄티누스 황제
http://blog.naver.com/loka8210/80060101210

. 신성로마제국의 오토1세
http://blog.naver.com/loka8210/80097017073

. 십자군을 격퇴한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
http://blog.naver.com/loka8210/80031139640

. 맘루크 왕조의 성립과 십자군 전쟁의 종결
http://blog.naver.com/loka8210/80053960207

. 로마제국을 부활시킨 샤를마뉴 대제
http://blog.naver.com/loka8210/80042536923

. 아틸라는 과연 복상사를 했을까?
http://blog.hankyung.com/raj99/309010

. 초록이 세상의 나라밖 산책
http://blog.daum.net/_blog/BlogView.do?blogid=0JFdt&articleno=8452262&admin=#ajax_history_home

. Johnmb 유튜브 동영상 모음집
http://www.youtube.com/profile?user=johnmb76#g/u

. 로마박사의 여행 이야기 - 라벤나
http://philroma.com/20094502724

훈족과 아틸라
http://sallysulbo1.mireene.com/idisk/rome/atilla.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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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로마제국가 부흥되기를 원했던 현대의 독재자 둘

. 피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http://blog.naver.com/loka8210/80059868149

. 광기의 파시스트 뭇솔리니
http://blog.naver.com/loka8210/80013478902


 늘푸른산 : http://blog.daum.net/sallysu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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